(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서울 강남구는 서초구와 함께 서울에서 수십억원대 초고가 아파트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대표 부촌(富村)이다.
아파트값이 워낙 고가인 탓에 대체로 서울 이외 타지역 거주자(외지인)의 매입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곳이 바로 강남구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결과가 나와 눈에 띈다. 강남구의 지난 1분기 아파트 외지인 매입 비중이 26.6%를 기록하며 서울 평균(25.8%)을 웃돈 것이다. 지난 2월에는 10건 중 3건을 외지인이 사들였다.
어찌 된 일일까.
강남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강남 몇 안 되는 9억원 이하 특례보금자리론 대상에 외지인 갭투자 몰려
7일 한국부동산원의 매입자 거주지별 아파트 매매거래 통계를 보면 거래 침체가 극심했던 작년 1분기 강남구 아파트의 외지인 매입 비중은 8.1%에 불과했다. 당시 서울 평균(22.3%)의 대략 3분의 1 수준이다.
작년 4분기 강남구의 외지인 매입 비중도 16.0%로 서울 평균(26.1%)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에 작년 동기 대비 18.5%포인트, 작년 4분기 대비 10%포인트 이상 외지인 비중이 증가했다. 지난 2월에는 외지인 매입 비중이 32.8%에 달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책 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이 가능한 9억원 이하 소형 아파트에서 외지인 거래가 많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단지가 강남구 개포동 성원대치2차(1천758가구)와 수서동 신동아(1천162가구) 아파트다.
둘 다 1992년에 준공돼 지은 지 30년 된 단지들로, 현재 각각 리모델링과 재건축 추진 호재가 있다.
성원대치2차 전용면적 33.18㎡는 1년 전 9억5천만원이던 아파트값이 금리 인상 여파로 하락해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8억원대 중후반대에 거래가 이뤄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 아파트 전용면적 33.18㎡는 작년 9∼12월까지 넉 달간 거래량이 고작 3건이었는데 정부가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도입계획을 발표한 올해 1월에 9건, 2월에 7건(계약일 기준)이 거래됐다.
한국부동산원이 전용 33.18㎡ 가운데 2월 신고된 10건(1월 계약분 포함)의 계약을 살펴본 결과 이 중 50%인 5건을 외지인이 전세를 낀 갭투자 형식으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건은 서울 거주자가, 1건은 외국인이 매수했다.
리모델링 호재가 있고 조망권이 양호하며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로 소문나면서 외지인이 몰렸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3월 들어 거래가가 9억원대로 올라 특례보금자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최근 대출 금리가 최하 3%대로 떨어지면서 다른 주택형까지 꾸준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인 아실의 통계를 보면 이 아파트는 올해 총 59건이 거래돼 대치동 은마아파트(51건)를 제치고 강남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파트로 기록됐다.
역시 최근 외지인 갭투자가 눈에 띈 수서동 신동아 전용 33.18㎡는 지난달 13일 최고 거래가가 8억9천900만원으로 9억원을 밑돈다. 이 주택형의 전셋값은 2억7천만∼2억8천만원 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충족한다 치고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을 받으면 1억2천만∼1억3천만원 남짓의 자기 자금으로 매수가 가능하다.
이 아파트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성원대치2차와 함께 '특례보금자리론' 적용이 가능한 단지로 명성을 얻으며 올해 강남구 내 거래 랭킹 9위(21건)에 올랐다.
1993년 준공해 역시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을 저울질하고 있는 수서동 까치마을(1천404가구)도 소형이 특례보금자리론 대상에 포함돼 거래가 증가한 단지다.
이 아파트는 전용 34.44㎡와 전용 39.6㎡ 2개 주택형이 지난달까지 9억원 이하에 팔렸다.
수서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시행 후 전세를 끼고 9억원 이하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젊은 외지인들이 부쩍 늘었다"며 "강남에 9억원 이하 단지가 귀한 데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 호재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수요가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최근 거래량이 늘긴 했지만 예년에 비하면 절대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외지인 거래가 조금만 늘어도 비중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2∼5월 거래된 주택 30%가 특례보금자리론 이용…시장 향배는?
부동산 시장에서는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주택 거래량 증가에 이 모기지 대출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특례보금자리론의 유효 신청 금액은 24조8천677억원(10만6천335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공급 목표(39조6천억원)의 62.8%가 판매된 것이다.
초기 출시 한 달간의 이용 목적은 '기존대출 상환'이 54.9%로 가장 많았는데 지난달 말 집계 결과 '신규주택 구입'이 53.6%(금액 기준)로 역전했다.
그사이 집을 사기 위한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금액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지금까지 신규주택 구입에 나간 대출 총액은 19조원으로, 1인당 평균 3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6만3천300여가구가 혜택을 본 셈이다.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전국의 주택 거래량을 약 20만건으로 추정할 경우 30% 이상이 특례보금자리론을 받아 주택을 구매했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역 아파트값 상승과 거래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특례보금자리론 판매 종료 이후의 시장 상황이 '진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최근 시중은행 금리가 최저 3%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특례보금자리론은 연 4%대 고정금리여서 출시 초기보다 매력이 반감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최근 대출 신청 속도도 초기보다는 둔화했다.
그러나 특례보금자리론도 우대금리 대상자는 연 3% 후반에 대출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최장 50년(만 34세 이하 또는 신혼부부)까지 장기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20∼40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용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이 목표액을 채워 조기마감 되더라도 추가 재원을 늘려 올해 연말까지는 공급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최근 늘어나기 시작한 주택 거래량이 하반기에는 예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주택시장의 바로미터인 서울 아파트의 경우 지난 4월 거래량은 3천188건이다. 5월은 이달 6일 현재 2천197건이 신고됐다.
5월 계약분의 실거래가 신고일은 이달 말까지로, 이런 속도면 4월 거래량을 뛰어넘어 4천건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서울 아파트 최근 5년 장기 평균 거래량은 월 5천∼6천가구 수준이다. 최소 이 정도 거래량이 몇 달간 간 지속돼야 시장이 진정한 '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다.
sm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