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되고 닷새 뒤 공사 임관식입니다. 대통령상과 총리상을 고건 권한대행이 주며 일인이역을 합니다.
당시 청와대가 보내온 연설 원고를, 총리실이 '고건 어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두 자만 바꾸고 원문대로 읽었습니다. 기자 회견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총선 뒤에야 기자들과 저녁을 들면서 스스로 '고난대행'이라고 했습니다.
국정이 안정되고 인기가 오르자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넌지시 떠보더랍니다.
"탄핵이 나오면 권한대행이 대선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그가 답했답니다.
"내가 국가를 책임지고 관리하는데 누구한테 맡기고 입후보하겠는가."
친노 쪽에서 견제가 심해졌고, 고건 총리는 탄핵 기각 열흘 뒤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1년 넘게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선두를 달렸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광폭 행보를 했습니다. 왕성한 현장 시찰과 기자회견, 대규모 가석방을 단행했습니다. '권한대행' 시계도 돌렸습니다.
당 대표를 거쳐 대선에 도전하며 정치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 국무조정실장으로 고건 대행을 보좌했던 한 총리가 권한대행이 됐습니다.
한 대행은 명패도 명함도 시계도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고건 대행을 떠올리게 하는 말도 했습니다.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 운영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다."
그러면서 천명했지요.
"정부의 모든 판단과 실행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 소신을 한 대행이 다시 밝히며 헌법재판관 세 명 임명 문제를 여야가 합의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했습니다.
합의는커녕 협의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실상 임명을 거부했습니다.
한 대행은 "개인의 거취나 영욕은 중요하지 않다"며 탄핵 소추를 감수할 뜻도 밝혔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판단,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민과 역사의 평가 역시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한 대행이 이루겠다던 공직 '마지막 소임'이 백척간두에 섰습니다.
12월 26일 앵커칼럼 오늘 '권한대행 고난대행'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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