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국내 첫 샹송 가수, 최양숙의 명곡입니다. 서울대 성악과에서 다진, 우아한 목소리 뒤로 기타 연주가 흐릅니다. 서울대 회화과에 다니던 김민기의 솜씨입니다. 아름다운 선율도 그가 썼습니다. 최양숙의 오빠였던 경음악 평론가 최경식이 후배 김민기한테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지요.
훗날 김민기가 저음으로 부른 노래, 압권입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하루아침에 선선해지는 가을 초입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곡도 드물 겁니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우리 둘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날은…"
김창완이 쓴 늦여름엔 이미 싱그러운 가을이 와 있습니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이, 간지러운 바람에 흩어집니다'
8월 절반이 꺾이도록 하늘이 불벼락을 내리꽂고 있습니다. 그제 서울 기온이 올여름 가장 더운 36.4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열대야는 내리 스무 닷새를 이어옵니다. 열흘 치 예보를 보면 적어도 25일까지 계속된답니다. 종전 기록 스무 엿새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입추는 배신해도 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이 선다'는 입추(立秋)가 여드레 전이었지만 가을은 언감생심 이었습니다. '더위를 치운다'는 처서(處暑)는 비로소 창문을 닫고 자는 날입니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선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하듯 가을빛이 완연해집니다. 그런데 배신의 처서가 되게 생겼습니다.
시성 두보가 늦여름 한가로운 강촌 정경을 노래했습니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자식은 바늘 두드려 낚시를 만드네.' 올 늦여름은 시선 이백처럼 나야 할 모양입니다. '숲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모자 벗어 석벽에 걸고, 머리에 솔바람을 쐬자.'
릴케는 여름 폭우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풍요로운 가을을 불러왔다고 찬미했습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여름이 길고 혹독할수록 가을이 찬란할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8월 15일 앵커칼럼 오늘 '늦더위 징글징글하다'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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