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인 레오파드2 전차 옆에 선 독일군 병사의 모습
[AFP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미국과 독일을 필두로 서방 각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주력전차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잇따라 표명하면서 이번 전쟁이 변곡점을 맞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의 반발과 확전 위험에도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과 야포, 대공미사일 등 '방어용'으로 볼 수 있는 무기만을 제공한다는 기조를 버리고, 본격적 공격무기인 '주력전차'를 넘겨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M1 에이브럼스 전차 31대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독일 정부는 자국 주력전차인 레오파르트2 1개 중대 규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다른 협력국에 수출한 레오파르트2의 우크라이나 반출도 허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이 재수출을 허용하기만 하면 자국이 보유한 레오파르트2 전차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밝혀온 폴란드는 이러한 발표를 크게 환영했다. 폴란드는 이미 독일 측에 레오파르트2 전차의 우크라이나 재수출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노르웨이 등도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자국이 운용 중인 레오파르트2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레오파르트2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독일에서 임차해 운용 중인 레오파르트2 18대를 네덜란드 정부가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폴란드군 레오파르트2 전차 훈련 장면
[AFP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적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절차를 진행 중인 핀란드와 스웨덴 역시 우크라이나에 자국이 보유한 레오파르트2를 지원하는 방안을 열어 놓은 상황이다.
이와 별개로 영국은 일찌감치 자국 주력전차인 챌린저2 14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며, 슬로바키아는 서방으로부터 레오파르트2 등을 받아 안보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면 내일이라도 소련제 T-72 전차 30대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미국 CNN 방송의 국제안보 에디터인 닉 페이튼 월시는 이날 홈페이지에 실린 분석 기사에서 "이건 중대한 결정이다. 부분적으로는 대공방어체계나 대전차 미사일과 달리 방어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상공세에서 러시아군을 타격하기 위한 무기란 점에선 이전에 지원한 야포나 다연장로켓발사기와 비슷하지만, 그런 무기체계와 달리 (전차는) 명백히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되찾는 것과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전차 제공은 우크라이나의 주권 수호를 위한 것이고 "공세적 위협(offensive threat)"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러시아 입장에선 자국 영토로 선언한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향한 공격 무기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까닭에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지원에 나서는 건 더는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에서 대공미사일 포대를 운용하는 러 병사
[로이터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가 반발하더라도 이번 전쟁이 감당하기 힘든 규모로 확전하지는 않으리라 판단해 공격무기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재고를 메우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데도 자국 방어에 필수적인 무기를 대량으로 우크라이나에 반출하는 건 러시아가 이번 전쟁으로 나토 회원국을 침공할 역량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될 수도 있다.
유럽 중심국이면서도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지원으로 친러노선에서 완전히 탈피했다는 것이나, 러시아 내부적으로 전쟁 회의론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도 주목할 지점이다.
다만, 러시아와 관련해 더는 레드라인이 없다고 말하기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월시는 "모스크바가 지금 당장은 상대적으로 무력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전쟁의 운명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바뀔 수 있다"면서 "원조 수위 상향 여부를 놓고 지난 수주간 벌어진 논쟁은 서방이 크렘린의 자존심을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였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방이 지원하는 전차가 실제로 전장에 투입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점도 변수다.
미국은 에이브럼스 전차 재고가 없어 새로 제조해야 하는 만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훈련 기간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레오파르트2 전차는 비교적 빨리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역시 조만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군의 춘계 공세 이전에 충분히 전력화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주앙 고메스 크라비뉴 포르투갈 외교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서방이 지원한 레오파르트2가 우크라이나에서 작전에 투입되기까지 약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hwangc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