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보람이었다. 가슴에는 희망이요, 천한 욕심은 없었다.'
시인 피천득이 맞은 광복은 해맑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글은 써서 뭐하느냐"며 붓을 꺾고 있던 때였지요.
'누구나 정답고 믿음직스러웠다.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
시인 오장환은 병상에 누워 광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저 병든 탕아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했습니다. 울며 두 주먹 쥐고 뛰쳐나갔습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병든 서울을…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거리마다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당의 자동차…'
'해방 공간'은 속물주의, 한탕주의로 어지러웠습니다. 이념과 타산에 따라 분열하고 증오하는 정치 현실에 시인은 좌절했습니다. 광복 80년이 돼 가는 지금은 어떤가요.
광복절이 두 쪽 나게 생겼습니다. 광복회와 야당이 광복절 경축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연합은 별도 기념식을 열겠다고 합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친일적 주장을 펴는 '뉴 라이트'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과거 발언을 근거로, 그가 기용된 것이 임시정부 정통성을 훼손하는 건국절 제정 포석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건국절을 추진한 적이 없습니다. 김 관장도 "건국절에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발언들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친일 인명사전에 잘못 매도되는 분들이 있다." 듣기에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싸잡아 친일로 매도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
김 관장이 적임자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 단체들과 마찰이 예상됐던 인사였으니 말입니다. 그 바람에 국민 통합과 경축 한마당이 국론 분열과 대결 무대가 돼버렸습니다.
거기서 개혁신당이 돋보입니다.
"인사가 부적절한 것과는 별개로 광복과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참석하겠다."
민주당한테도 불참을 재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마음을 열어 두루 껴안는, 광복절다운 행보입니다. 시인이 맞이했던 그날처럼 말입니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다 '나'가 아니라 '우리'였다.'
8월 13일 앵커칼럼 오늘 '두 쪽 난 광복절'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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