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앞날을 위해 우주로 떠나는 아버지를 어린 딸이 말리자 아버지가 말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기억에 남기 위해 존재하지.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거야"
늙어버린 딸은,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젊은 아버지와 재회하며 비로소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죽는 걸 지켜봐선 안 되지요"
화가 장욱진에게 아이가 없는 가족, 아이가 없는 삶과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담은 그림들엔 늘 작은 집에 옹기종기 식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이 관람객 자신의 피붙이처럼 살갑게 다가옵니다. 아이가 있어 가족과 가정이 보석처럼 빛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가가 세상에 온 후론 비단결 같은 매일이었습니다 아가는 평화의 동산, 지줄대는 기쁨의 시내입니다"
그런데 서울 시민 열에 여덟이 자녀를 '경제적 부담' 으로 느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 열다섯 곳 중에서 단연 최고치입니다. 반면 자녀가 '인생의 기쁨' 이라는 응답은 셋 중 둘에 그쳐 도쿄, 타이베이 다음으로 낮았습니다.
그리고 '기쁨'보다 '부담'이라는 응답이 많이 나온 도시는 서울과 도쿄 뿐입니다.
거기에서 두 응답의 격차를 따지면 서울이 도쿄보다 훨씬 큽니다.
삶의 만족도 역시 서울이 꼴찌였습니다. 한국인이 유일하게 '삶의 최고 가치'로 '물질적 행복'을 꼽았던 재작년 조사와도 맥이 통합니다.
전체 합산 순위에서 '가족'이 으뜸이었지만, 한국은 '물질' 다음으로 '건강'을 꼽았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족'을 꼽았었지요.
돈벌이도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일 텐데 가족과 돈의 가치가 뒤집힌 겁니다.
나아가 이제는 가족을 '기쁨'보다 '짐'으로 여긴다는 조사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참담하기에 앞서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요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 양육비와 폭등한 주거비, 치열한 생존경쟁을 물론 모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무자식 상팔자'에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반어적 자조적 탄식이, 실제 삶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무슨 희망과 미래가 있을까요.
인도 시성 타고르는 아기의 순진무구함이 신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아기는, 신이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는 전갈을 지니고 세상에 나온다"고 찬미했지요.
그런데 우리네 마음이 이토록 삭막해진 것이 단지 물질 탓일까요. 성실하게 일해 가족과 평범한 행복을 누리려는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린 것도 비단 돈 때문일까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지금 당장 제가 여러분께 해 드릴 답이 없는게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5월 30일 앵커의 시선은 '짐이 된 가족' 이었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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