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주민들에게 4.3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무차별적인 토벌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현시종(86세)/서귀포시 표선면 : 총으로 죽이면 빨리 죽는데, 쇠 창으로 찔러. (빨리)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총으로 쏘면 빨리 죽거든.]
당시 주민들은 산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태경(93세)/서귀포시 표선면 : 곱지도라고 있어요. 그때 가시리 목장 인근이고, 주로 가시리 목장 위에 '고개물'이라고 그 근처에 사람이 많이 모였어요.]
[현시종(86세)/서귀포시 표선면 : 다 안좌동으로 여문영아리로, 그때 가친오름, 물찻오름. (거기서 사셨어요) 네, 네.]
증언과 자문을 통해 피난 동선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안좌동에서 여문영아리 오름, 물찻 오름까지, 직선거리로 13킬로미터나 되는 산길입니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물찻오름 일대를 확인해 봤습니다.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 가 봤습니다.
나무가 자라난 넓은 공터가 확인되고, 곳곳이 움푹 파여 있습니다.
구덩이는 깊이 1미터, 길이 4에서 6미터 가량으로, 현장에서 확인된 구덩이만 10개에 이릅니다.
피난민들이 생활했던 피난처로 추정됩니다.
피난민들은 구덩이 양옆으로 나무를 기대고 얽어 움막을 만들어 생활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봉/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 전체적인 면에서는 여기가 제일 큰 자리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것 중에는 가장 큰 조사 지역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봅니다.]
이 현장을 중심으로 금속 탐지기를 이용한 간이 조사도 해봤습니다.
탄피와 낫, 그릇뿐만 아니라, 길이가 짧은 특이한 숟가락도 발견됐습니다.
[한상봉/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전용 숟가락이었습니다. 이 '걷갱이 숟가락'이 나왔다는 건, 피난처에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피난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숲 속도 확인해 봤습니다.
가지런히 정리된 돌담들이 확인됩니다.
각 길이만 30미터가량의 삼각형 모양으로 내부에 무기고와 침상이 있었던 곳도 확인됩니다.
군경이 지난 1952년쯤 한라산 일대에 설치한 가친오름 주둔소로, 제주 동남부 지역의 주둔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합니다.
[한상봉/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 산 안쪽에 주둔소를 지어서 확보함으로써 해안 마을과 산간 마을을 완전히 분리시켜 식량을 차단해 버리는 거죠.]
이 주둔소는 규모뿐만 아니라 원형이 잘 남아 있어 4.3 후기 토벌작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 중산간 곳곳에서 산재된 이런 집단 피난처와 군경 주둔소는 4.3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지만, 무관심 속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취재 : 김동은 JIBS, 영상취재 : 윤인수 JIBS,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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