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준비한 연속 보도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해상 교역의 중심이었던 경남 김해와 고성을 중심으로 금관가야와 소가야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경북 고령과 전북 남원의 고분군을 중심으로 가야 연맹의 영역이 얼마나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박종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해발 4백m 지역에 우뚝 솟아있는 고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능선을 따라 7백여 기에 달하는 고분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김해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 연맹은 4세기 후반 고구려의 침입으로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이후 가야 연맹은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는데,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본거지라고 하겠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고분은 평지에, 가야의 고분은 구릉이나 산지에 조성된 것이 차이점입니다.
특히 지산동 고분군은 가야 고분군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에 조성된 것이 특징입니다.
[김기홍 / 고령 대가야 박물관 학예연구사 : (가파른 능선에 고분을 축조한 것은) 지상에서 봤을 때 좀 더 우러러 보이고 피장자의 권위, 국가의 권력을 내포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닌가.]
유물에서도 대가야만의 독창성이 드러납니다.
지산리 32호분에서 나온 금동관은 풀잎이나 꽃잎 모양을 장식했는데, 백제나 신라와는 다른 대가야만의 특색입니다.
정교한 귀걸이 공예 기술도 돋보이는 데, 이런 유형은 일본 구마모토 고분군에서도 발견됐습니다.
특히, 지산리 44호분은 40명이 넘는 순장자가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대가야 지배자가 강력한 권력을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김기홍 / 고령 대가야 박물관 학예연구사 : (지산동 44호분의 경우) 1개의 주곽, 2개의 부곽, 32개의 순장곽이 주곽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축조된 것이 특징인데요. 그 안에서는 40여 명에 달하는 순장자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후기 가야 연맹의 중심 세력은 소백산맥을 넘어 호남 동부권까지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고분군이 바로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4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고분인지 능선인지 구분이 쉽지 않지만, 가야 시대 고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지리적 특성에 따라 백제의 고분으로 추정되었는데, 발굴 조사 결과 가야의 고분으로 밝혀졌습니다.
[백옥종 / 전북 남원시 학예연구사 : (당연히 백제 시대 고분군으로 인식했는데) 1989년도에 고분군을 발굴 조사해 보니, 가야시대 토기와 무덤 양상이 확인되어서, 발굴 조사 및 출토 유물을 통해서 가야 시대 고분군임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닭머리 달린 청자,
또,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금동 신발과 유사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후기 가야 연맹 가운데 중국·백제와의 교역 창구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백옥종 / 전북 남원시 학예연구사 : 백제 중앙 집권 세력과 가야, 운봉고원 가야 정치 세력이 상호 문물 교류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령과 남원의 고분군은 후기 가야 연맹이 경남 남해안을 넘어 경북과 호남의 일부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영역의 확장은 군사와 외교 등에서 힘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후기 가야 연맹의 국력을 확인시켜주는 반증이라고 하겠습니다.
YTN 박종혁입니다.
YTN 박종혁 (johnpark@ytn.co.kr)
촬영기자: 강태우
그래픽: 주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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