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갓난아기 때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이 70년 만에 백발의 노인이 돼서 아버지의 유골 앞에 섰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발굴하고 있는데요, 밀착카메라 권민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충남 서산의 한 야산입니다.
높은 산길을 따라 70년이 넘은 누군가의 흔적이 있습니다.
산을 올라오면 이렇게 폭과 깊이가 1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구덩이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사격을 할 때 사람과 물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건데 이곳을 따라 70구에 가까운 유해가 빽빽하게 발굴됐습니다.
붉은 흙 위로 흰 유해들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1950년 가을, 국군과 경찰이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총을 쏜 장소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서산에서만 최소 1860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발굴 2주만에 드러난 유해들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윤성식/동방문화재연구원 과장 : 여기 밑창이 구두로 추정되고요. 머리가 이쪽에 있고, 팔이 이렇게 뒤로 꺾여 있고. 아마 이렇게 바로 그냥 매몰이 돼서…]
1차 발굴이 끝난 곳에선 유해 실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옆에선 삽과 솔로 뼈와 흙을 구분하는 작업도 아직 진행중인데요.
이쪽에선 흙을 채에 쳐서, 혹시 놓친 유해파편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단추 같은 희생자의 유품 사이로 녹슨 탄피가 보입니다.
혹시나 아버지의 것일까, 눈을 떼지 못하다가 노인이 된 아들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승래/당시 생후 3개월 : 이 뼛조각이 너의 아버지 거다, 이것만이라도 확인을 해봤으면 제일 소원이네요. 내 칠십 평생 너무 억울하게 살았어요.]
[김정순/당시 9세 :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 들어올 때 아버지가 내 손목을 잡고 '얘는 살려야 할텐디' 그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를 잃은 후 가족들도 연좌제에 묶여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무진/당시 3세 : 우리가 참 억울하게 죽였다. 판결만 해주면 마음이 참 아 나도 이제 참 너희들이 손가락질한 거보다 떳떳한 사람이 아니냐…]
직접 증언을 모으고, 땅을 파기 시작한 건 유족들이었습니다.
[황창순/당시 생후 3개월 : 정강이뼈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그걸 사진 찍어서 진화위에 가서 접수를 하고.]
진실 규명은 70년이 흐른 뒤에야 첫 걸음을 뗐습니다.
[황홍순/당시 6세 : 아버지가 지금 나타났다고 하면? 하고 싶은 말, 무지 많이 있겠지. 왜 지금서 나타났느냐고 붙잡고 울고…]
진화위가 서산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발굴 중인 유골은 DNA 검사를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74년, 갓난아기였던 아들이 백발노인이 돼 아버지 유해를 찾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땅 속에 갇혀 있던 역사는 뒤늦게나마 세상 밖으로 나와 그날의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권민재입니다.
(작가 : 유승민 / 영상그래픽 : 이송의 / 인턴기자 : 정의서)
권민재 기자 , 이현일,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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