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무자본 갭 투자 전세 사기 사건 수사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빌라왕' 배후에 있는 실소유주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이를 발판으로 경찰 수사가 더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사회부 임성재 기자와 이야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임 기자, '빌라왕', '빌라의 신' 등 전세 사기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도 여럿인데, 그만큼 비슷한 사건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한다는 얘기겠죠?
[기자]
네, 지난해 10월, 천100채가 넘는 빌라를 보유한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전세 사기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세금 62억 원을 미납한 상태였고, 세입자들은 졸지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검찰과 경찰도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는데요,
수도권에서 빌라 6백여 채를 보유한 또 다른 김 모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빌라왕'으로 불린 임대인 뒤에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또, 이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배후엔 30대 신 모 씨라는 실소유주가 있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입니다.
[앵커]
'빌라왕' 사건과 관련해 소문만 무성했던 배후 인물의 윤곽이 드러난 셈이네요?
[기자]
네, 기존에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계약한 집의 소유주들만 조명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나 '청년 빌라왕', '빌라의 신', '건축왕'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거론됐습니다.
모두 등기부등본상 소유주였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집주인들이 단기간에, 그것도 혼자서 이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배후 세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기존 소유주들이 '몸통'이 아닐 거라는 추측인데요,
예를 들어, 대표적인 '빌라왕'인 숨진 김 씨가 신용 불량자 신분이었고, 어마어마한 미납 세금이 있었던 점 등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점점 커졌는데,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 수사에서 처음 등장한 겁니다.
[앵커]
그런데, '빌라왕 배후'로 의심되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 실소유주가 여러 빌라왕을 거느린 정황도 드러났다고요?
[기자]
네, 또 다른 전세 사기 사건인 '빌라왕' 정 모 씨 사건과 접점이 발견됐습니다.
정 씨는 서울 강서구 일대에 2백여 채 빌라를 소유한 인물인데, 재작년 7월 제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수상했던 건 정 씨가 숨진 이후에 대리인이란 인물이 위임장을 들고 다니며 매매·임대 계약을 하고 다닌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인데요.
경찰은 피해자 진술 등을 토대로 이 인물이 누구인지, 실제 거래 주체는 누구인지 추적해왔습니다.
그런데, 추적을 하다 보니 앞선 6백여 채 빌라를 소유한 김 씨 사건에서 등장한 30대 신 모 씨가 실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빌라왕'이라고 불렸던 김 씨나 정 씨가 사실은 '바지 사장'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인데,
경찰은 이 같은 '바지 사장'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YTN 취재진이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 차린 사무실도 직접 찾아가 봤죠?
[기자]
네, 신 씨가 실제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이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요.
사무실 안에서 직원은 찾아볼 수 없고, '폐업'이라는 안내가 출입문에 붙은 상태였습니다.
건물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사무실에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건 벌써 2주도 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무실 운영이 잘 안 되어서 나간다고 들었다고 하는데요.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건물 관계자 : 영업이 잘 안 된다고 그래서 나간 거예요. 관리 사무실에 얘기를 해놓고 간 것 같더라고요. 안 나온 지는 2주? 2주 좀 넘은 것 같은데요.]
[앵커]
그런데, 신 씨가 실제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고요?
[기자]
네, 문제가 된 컨설팅 업체의 등기부 등본을 떼봤습니다.
경찰은 이 업체의 실소유주가 30대 신 모 씨라고 보고 있는데요.
정작 업체 대표는 전 모 씨로 돼 있었습니다.
사내이사나 감사 등 명단에도 신 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업체는 저희가 확인한 곳만 최소 2곳인데요,
경찰은 신 씨가 이런 업체를 차렸다가 폐업하고, 또 다른 업체를 차리는 행동을 반복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부동산 컨설팅 업체였다면 굳이 폐업과 개업을 반복할 이유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임 기자 설명을 들어보면, 전세 사기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주체가 등장합니다.
마치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 같네요.
[기자]
구조를 다시 살펴보면 먼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등장합니다.
임대인으로 알고 있던 인물들이 갑자기 숨지는 등의 이유로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임대인은 사실은 실제 주인이 아닌 '바지 사장'으로 명의만 부동산 컨설팅 업체에 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정작 실질적인 계약은 대리인 등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하는 건데, 업체 뒤에는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30대 신 모 씨가 실소유주로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돈 한 푼 안들이고,
심지어는 실제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챙긴 주체가 여럿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최대 수혜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앵커]
돈 한 푼 안들이고, 보증금으로 빌라를 사는 무자본 갭 투자 전세 사기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실제 매매가보다도 높은 전세 보증금을 챙기기도 하네요?
[기자]
최근 전세 사기는 주로 빌라나 오피스텔이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빌라 등은 아무래도 실제 사려는 사람이 적은데요,
때문에, 건축주가 매매 과정에서 물건을 팔아주는 대신, 임대 사업자나 공인중개사에게 돌아갈 수백에서 수천만 원 대 '리베이트'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 경우, 돈 한 푼 안들이고 빌라를 사면서 정작 전세 세입자에게 원래 가격에 '리베이트'까지 전가하기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높은 보증금을 받아내는 겁니다.
보통 '리베이트'는 임대 사업자나 공인중개사끼리 나눠 갖는데,
같은 금액을 낼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전세 사기 피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이 "투자였다"는 거지만,
수사 기관은 이 같은 '리베이트'를 단서로 애초부터 임차인들을 속이려는 사기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도 합니다.
[앵커]
하지만 수사기관이 사기 의도를 입증하는 게 쉽지는 않죠?
[기자]
네, 법리적으로 사기 혐의를 적용하는 데 있어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인천 '건축왕' 사례인데요,
한 개발업자가 주택 2천7백 채를 지으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선순위 근저당을 설정합니다.
대신 주변보다 약간 저렴하게 전세금을 설정해 세입자를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최근 6백여 가구가 경매나 공매 절차가 진행되는 등 탈이 났지만, 법원은 이 개발업자와 공범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실제 사기 의도가 있었는지 혐의 소명이 불충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개발업자 측이 법원에 채무 변제 계획까지 제출한 게 주효했는데요.
그래서 수사 기관은 애초 보증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혐의를 입증할 단서로 '리베이트' 등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피해 입주민 : (저희는) 이제 막 시작하는 신혼부부 세대인데 굉장히 암담했고요. 처음에 저희도 이제 부동산 관련된 걸 자세하게 알지 못하다 보니까 되게 막막했죠.]
[앵커]
피해자들 속만 타들어 가는 상황이네요.
현재 전세 사기에 대한 경찰 수사 상황은 어떤가요?
[기자]
워낙 전세 사기 사건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서 수사 주체도 많습니다.
서울과 인천 경찰, 검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빌라왕'의 배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부동산 컨설팅 업체 실소유주 신 모 씨에 대해선 내일 구속영장 실질 심사가 열릴 예정인데요.
앞으로 수사에서 다른 '빌라왕'들의 배후에도 신 씨가 있었는지, 유사 사례는 더 없는지를 확인하는 게 수사 확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정부도 전세 사기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죠?
[기자]
네, 국토부는 이번 달 안에 전세 사기 피해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안타까운 건 '빌라왕' 사건 같은 전세 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 경험이 적은 20, 30대라는 점입니다.
국토부가 경찰에 수사 의뢰한 전세 사기 사건 106건 피해자 가운데, 2030 피해자는 70%에 가까웠는데요.
지역으로 보면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이 많았습니다.
정부는 세입자들이 보증 보험을 통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걸리는 기간을 앞당기겠다고 했는데,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전세 사기 피해가 알려지는 상황인데, 배후 수사도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사회1부 임성재 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YTN 임성재 (lsj6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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