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금융감독원장이니까 입김이 셀 수밖에 없을 텐데 요즘 부쩍 대출 관련 언급이 많았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주택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정책을 점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은 "정상적인 주택 거래에서 발생하는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며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말해 상황에 따라 가계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던졌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에 나온 (은행권) 대출 상품들의 내용에 대해 점검해 보겠다"고 말해, 경우에 따라서는 징계를 할 수도 있다는 의미까지 실었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은행들은 순간 갈 길을 잃고 '어쩌란 말이냐'는 혼란에 빠지는 분위기였습니다.
[앵커]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그 자체로만 보면 큰 문제가 있는 발언은 아닌 것 같은데 은행들이 왜 출렁이는 건가요?
[기자]
말씀대로 이 부분만 떼어서 보면 뭐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말의 기조가 불과 며칠 사이에 거의 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죠. 8월 25일 이복현 원장은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출 규제를 하라니까 은행들이 금리를 올려서 배만 불리고 있는데, 이런 은행들을 손을 좀 봐야겠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발언이죠.
은행들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출 한도 축소와 유주택자 대출 제한 같은 조치와 함께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까지 막는 등의 조치를 경쟁적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불과 10일 만에 이 원장의 메시지가 대출 규제 완화 쪽으로 바뀐 겁니다.
물론 실수요자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 구분이 애매해서 결국 대출 규제를 세게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앵커]
그런데 이전에도 이복현 원장의 말의 기조가 바뀐 적이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고금리 지속으로 서민의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고 말해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 금리를 낮춘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에는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주요 은행들이 한 달 사이 20번 넘는 금리 인상을 벌이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이후 25일에는 금리 인상만 한다고 다른 방안을 강하게 주문했고, 어제 다시 대출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듯한 말을 해 불과 두 달여 사이에 왔다 갔다를 세 번이나 한 셈입니다.
[앵커]
금융계 최대 실권자의 말이 이렇게 기조가 바뀌면 금융권은 물론 실제 금융소비자들도 혼란이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부동산 거래는 대부분 대출을 끼고 이뤄지는데 계약 당시 계획이 급변하는 대출 규제로 차질을 빚거나 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 걱정이 커지는 현상이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더욱이 금감원장의 말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은행들이 혼란스러운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금감원장이 대출 정책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권고성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잘 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과하면 줄이고, 약하면 좀 더 강하게 푸시할 수는 있는데, 다만 그 기조의 변화가 너무 빨리, 또 너무 직접적으로, 또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그 원래 발언의 취지와 달리 혼란만 가져올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YTN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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