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문제의 그 날, 책임을 따져볼 단서가 또 하나 있습니다. 군이 그날 아침에 갑자기 전쟁 직전에나 발동하는 최고 경계 단계 '진돗개 하나'를 내리고 병사들한테 실탄을 나눠줬다는 것입니다. 이 지시를 누가 내렸나, 군에 자료가 남아있는지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장훈경 기자입니다.
<기자>
전남도청 집단발포 하루 전 광주역 앞에서도 시민 4명이 계엄군의 총에 희생됐습니다.
이 광주역 발포와 도청 앞 발포, 모두 계엄군이 공식 자위권을 발동한 5월 21일 저녁 이전에 벌어진 대량 학살입니다.
[조광흠/당시 현장 취재기자 :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한다고 경고한다든가 그러면서 공중으로 위협사격을 한다든가 (하지 않고) 군이 집단으로 실탄을 지급받은 줄은 몰랐죠. 시위대도 마음이 설마 쏘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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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 앞 발포가 있던 5월 21일, 최고등급 방어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오전 8시 광주 전역에 발령됐습니다.
광주 기갑학교부대 창고에서 2018년 발견된 문건인데 오전 11시 실탄을 분배했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 연구소 교수 : 진돗개 하나는 전시 태세에 대한 군 작전 개념이기 때문에 실탄을 분배해준다는 의미는 사격해도 무방하다는 사격 명령과 비슷한 거죠.]
5·18 연구자들은 이런 일련의 집단 발포가 20사단의 투입과 관련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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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 발포가 있던 20일 밤에는 20사단이 광주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고 도청 앞 집단 발포와 헬기 사격이 목격됐던 시간대에는 20사단이 헬기로 도청에 투입될 예정이었다는 당시 군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시민 저항으로 20사단 투입이 차질을 빚자 계엄군이 무리하게 총격을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20사단 배치 현황을 파악하고 진돗개 하나를 결정한 5월 21일 새벽, 국방부에서는 군 수뇌부 회의가 한창이었는데 당시 최고 권력자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참석했습니다.
(영상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