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광대들의 인기가 요즘처럼 시들한 적이 없어. 현명하다는 자들이 바보광대보다 더 바보 같으니까."
효녀 셋째를 버리고 악녀 큰딸의 궁전에 머무는 리어왕에게 광대가 독설을 퍼붓습니다. 결국 광야를 헤매는 리어왕이 헐벗은 백성의 고통을 체감하며 뉘우칩니다.
"아, 나는 이런 일에 너무나 소홀했구나! 가식이여, 치료를 받아라!"
밤새 폭설 내린 아침, 부러져 나간 나무 설해목(雪害木)이 눈부십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저 빛나는 자해, 혹은 아름다운 마감…'
달마 조사에게 혜가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달마가 꿈쩍도 않자, 눈밭에 서서 팔을 잘라 바쳤습니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선종 2대 조가 됐습니다. 만약 분을 못 참고 오기로 잘랐다면 어리석은 자해, 참담한 마감 이었겠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거친 광야로 나섰습니다. 설마 두 시간 뒤 일도 예상 못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군(軍)과 국민이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고 착각한 것도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자해나 다름없는 일을 왜 밀어붙인 걸까요. 더 잃을 것도 없으니 역풍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였을까요.
"돌을 맞으며 가겠다"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둑에서 돌이키지 못할 열세에 몰리면 돌 두어 개를 조용히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투석(投石)은 말 그대로 냅다 바둑판에 내던지는 격입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염두에 둔 극단적 방편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거라면 부부 모두를 폭풍우 앞에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벼랑길을 돌아 나오는 사람에게 노인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가 아픈가. 다 아픕니다. 노인은 내 가슴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가 아픈가.' 타인의 상처에 무감각하고, 자기 안의 병도 보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던진 회초리였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혼돈에 빠뜨리고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경제 강국이자 민주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해쳤습니다. 이 나라 보수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12월 4일 앵커칼럼 오늘 '참담한 자해극'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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