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들은 나를 파멸 시키려 합니다. 나는 당하지 않겠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모두가 왕의 부하들'은 두 차례 영화화됐습니다. 정의롭고 순수한 열정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변호사가, 초심을 잃고 권력의 화신이 돼 자멸하는 이야기지요.
그는 정치 거물이 될수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부꾼 부하들에 에워싸여 포악한 정치 동물로 변해갑니다. '왕의 부하'를 슬쩍 비튼 또 하나 명화가 '모두가 대통령의 부하들'입니다.
워터게이트를 파헤쳐 닉슨을 파멸시킨 두 기자를 그립니다. 여기서 '부하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추종하는 주변 인물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폭로자 '딥 스로트' 덕분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달팽이 뿔의 다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달팽이 머리에 솟은 두 더듬이에 올라앉아 삿대질하듯, 명분도 실리도 다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싸움을 뜻하지요.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일단 봉합된, 여당 내분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 전 의원은 이른바 '윤심'을 얻지 못한 채 20여 일 만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출발점은, 장관급 요직을 맡은 지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에서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데 있습니다.
애초부터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저출산 부위원장 자리를 고사했어야 한다는 말도 많았습니다. 그를 중용한 대통령 입장에서는 배려가 배신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양손에 쥔 떡을 둘 다 놓치는 모양새가 됐고, 일단은 정치인으로서의 미래를 예상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말이지요. 그동안 나 전 의원을 향한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십자 포화도 차마 지켜보기 힘들 지경 이었습니다.
2선으로 물러난 듯하던 '윤핵관'이 다시 전면에 나섰고, 초선 의원들까지 정당 정치 정신을 한꺼번에 내팽개치는 반대 행렬에 섰습니다. 소신이었다고 항변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이건 보기가 흉했습니다. '집단 린치'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지요.
대통령은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달팽이 뿔싸움처럼 구태와 내분에 휩싸인 정당이, 민주적 총선에서 국민 선택을 받은 예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힘 이번 대표 경선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철저히 배제된 당원 투표로만 이뤄집니다. 그건 국민의힘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 책임은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평가할 겁니다.
민의가 배제된 경선에서 뽑힌 대표가 민의에 부합하는 공천을 할 수 있는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모진 추위가 물러가나 싶더니 대설주의보가 닥쳤습니다.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백색의 계엄령.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몸을 감춘다"
퍼붓는 폭설 속에 격리된 외딴 산골처럼, 집권당 국민의힘이 세상과 쌓은 담을 더 높여 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1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국민의힘 대설주의보' 였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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