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 김동민 소설가

2024.01.08 방영 조회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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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N 인물포커스입니다. 소설을 쓰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몇 대에 걸친 이야기인 대하소설을 쓰는 분들은 흔치 않습니다. 오늘은 21권 분량의 대하소설 ′백성′을 펴낸 진주의 김동민 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예, 반갑습니다. Q.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이번에 원고 분량 3만 2천 장에 달하는 21권짜리 ′백성′이라는 대하소설을 펴낸 소설가 김동민입니다. 저를 알고 있는 독자들은 저를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날았다고 하는, 그러니까 우리 고문헌에 의하면 세계 최초의 비행기라고 할 수 있는 ′비차′, 그것을 주제로 다룬 비차 작가라고 알고 있고요. 또 일제가 강제로 약탈해간 우리나라 신라 종인 진주에 연지사 종이 있는데 그걸 우리가 돌려달라고 하는 반환 요구서를 썼던 작가다 이렇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이번에 펴내신 대하소설 ′백성′은 어떤 작품입니까? A. 먼저 시간적 배경은 삼정의 문란이 아주 심하고 그 외척의 세도정치가 아주 기승을 부리던 조선 철종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해방되기 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공간적 배경은 진주를 비롯한 경상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다음에 서울, 부산, 그다음에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지로 배경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우리 조선인,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 불란서인(프랑스인), 호주인 등 해가지고 모두 한 400여 명이 나오고 있고요, 그다음에 가장 어떤 큰 맥은 ′비화′라는 인물과 ′옥진′, 나중에 ′해랑′이라고 바뀝니다마는 ′옥진′ 두 사람이 이끄는 두 가문의 끝없는 사투를 가장 핵으로 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조정과 외세의 부당한 억누름에 항거하는 우리 힘없는 백성들의 저항을 담아낸 소설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Q. 그 시대의 배경을 아마 그대로 고스란히 담으셨을 텐데요, 이 소설 집필하시는 데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A. 작품 구상과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데 한 5년 정도 소요됐고요, 그다음에 실제 집필하는 데만 한 2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모두 한 25년 정도 걸려서 제가 완성한 대하소설인데요, 물론 그 사이에 제가 경남일보에다가 앞부분은 조금 연재를 했었는데 그 연재 속도 분량으로 하면 50년이 걸려도 도저히 완성을 못할 것 같아서 제가 과감하게 중단을 해버렸습니다. 그다음에 또 전력하기 위해서 제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의 한 3분의 1 이상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오로지 이 작품에만 달라붙었던 그런 세월이었습니다. Q. 소설 속에 등장 인물만 해도 400여 명에 이르는데요, 이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A. 사실은 분량이 워낙 많다보니까 제가 메시지가 참 많은데, 몇 가지만 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맨 처음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이 흔히들 임술민란이라고 불리는 진주농민항쟁에 있습니다. 이것을 진주의 유계춘 소설에서는 ′유춘계′라고 나와 있습니다마는 유계춘이라는 분이 우리 말로 지은 언가가 있습니다.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라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제가 어릴 때는 뭣도 모르고 막 불렀는데 이 노래가 저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권 노래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사실 이거를 시발점으로 해서 전국적으로 힘없는 우리 민중들, 또 백성들의 농민들의 그런 투쟁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상당히 그 정당한 운동으로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제가 한번 던지고 싶었고요, 그다음에 제가 또 하고 싶은 게 여성 교육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여성 교육 하면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이화여대나 숙명여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보면 선교사들이 선교 목적으로 세웠던 학교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이 진주라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학급을 만들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진주에서 콩나물 국밥집을 하는 진주 사람들은 김정부인 혹은 그 ′꼼쟁이 할매′라고 하는데요, 이분이 남자도 아닌 여자분이 진주에 최초로 여자 학급을 만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명실상부한 남녀공학은 오히려 진주에서 꼼쟁이 할매로부터 시작됐지 않나 이런 메시지도 전해보고 싶고요. 그다음에 또 우리가 천주교 박해가 있다면 그다음에 보통 사람들은 김대건 신부만 떠올립니다. 그런데 진주에 무두묘라는 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머리가 없는 무덤′이라는 뜻인데요, 참 슬픈 애틋한 사연이었는데 그 진주에 정찬문이라는 분이 천주교 전도 활동을 많이 하다가 잡혀갑니다. 그리고 배교해라 해도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다가 진주성 밖에서 이제 목이 잘리거든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본떼를 보여준다고 그 잘린 목을 장대에 매달아서 진주성 밖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그 목 없는 시신은 남강 백사장에 굴러다녔어요. 그걸 보고 친지들이 거두어 시신을 거두어 가지고 허유고개라는 데다가 이렇게 매장을 합니다. 그리고 뒤에 제가 들어보니까 그것이 이제 다른 데로 옮겨가지고 천주교한테 어떤 성지로서 지금 상당히 추앙을 받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Q. 긴 대하소설을 마무리 지으셨는데 좀 쉬기도 하셔야겠지만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A. 제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단군왕검과 진주성 2차 전투입니다. 단군왕검은 일제에 의해서 너무나 왜곡된 것이 많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우리가 바르게 정립을 시켜야 되겠다 하는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성 2차 전투는 제가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그 ′비차′라는 소설책에서 흔히들 진주대첩이라고 불리는 진주성 1차 대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진주성 2차 대첩을 다룬 소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을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료도 빈약하고 또 특히 우리가 패배한 전투 아닙니까? 아주 민감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독자도 그렇지만 작가들도 쉽게 쓰기가 어려운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거는 반드시 다뤄야 할 소재라고 보고, 제가 역량이 닿으면 꼭 단군왕검하고 그다음에 진주성 2차 전투에 대해서 꼭 이렇게 책으로 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계속 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바쁘신데 출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물포커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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