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선거가 다가오면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엽니다. 책을 팔면서 책값 이상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를 받았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어서 편법으로 정치 자금을 모으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먼저 엄민재 기자입니다.
<엄민재 기자>
전당대회에 출마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부터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자 5권, 5권이요?]
봉투에 5만 원권 지폐 2장을 넣는 한 참석자.
1만 5천 원 정가인 책 2권을 받아들었지만,
[여기요, 2권만 주세요.]
거스름돈을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모금함에는 계속 흰 봉투가 들어가고 10권, 20권을 한꺼번에 사 가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출판기념회 참석자 : 책을 많이 사주시면 그만큼 또 의원님 쪽에서는 좋으신 거죠. 그만큼 지지를 하고 있다는 표현도 되고요.]
책값 명목의 후원금을 자유롭게 거둬들이는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모금 한도가 없고 수입 내역을 공개하거나 신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간 한도가 기본 1억 5천만 원인 정치 후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내역을 신고해야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선거일 전 90일부터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규정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다 보니 출판기념회로 거둬들인 후원금이 신고도 되지 않은 채 장롱 속에 보관되기도 합니다.
[증권사 직원 : 적게는 한 50권, 100권, 많게는 그 이상 살 때도 있고, 합법적으로 정치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되게 큰 기회다 보니 없어지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어요.]
정치인은 대놓고 후원금을 모을 수 있고 돈을 건네는 쪽도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영상취재 : 이찬수, 영상편집 : 하성원, CG : 엄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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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렇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출판기념회를 바꿔보자는 시도도 그동안 있었습니다. 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까지 있었지만, 그때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안희재 기자입니다.
<안희재 기자>
출판기념회 개선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9년 전,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법안 발의 대가로 출판기념회 축하금 수천만 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자 당시 여당 대표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김무성/당시 새누리당 대표 (2014년 8월) :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에 있는 고위 공직자는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아야…. (선관위에서) 법의 사각지대, 출판기념회 문화를 없애기 위한 빨리 법 조치를 해주길….]
선관위가 개선안을 내놨고 야당도 화답했습니다.
[한정애/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2014년 10월) : (당은) 이미 출판기념회 제도의 폐지까지도 검토하고 있었던 만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러한 개선안을 적극 수용하고….]
책값 외 어떤 금품도 받아서는 안 되고 정가보다 많이 챙기는 것 역시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2014년 이후 6차례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돼 시간만 끌다 폐기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출판기념회는 의원들의 후원금 모금 창구로 계속 활용됐습니다.
[황희/당시 문체부 장관 후보자 (2021년 2월) : (정확히 얼마 들어왔습니까, 출판기념회 때?) 정확하게는 전체는 1억 2천만 원 정도이고요. 거기에 책값이랑 행사비랑 해서 저희가 지출 비용으로….]
출판기념회 관련 마지막 법 개정 발의는 지난 2018년, 1년 남짓 남은 21대 국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로 한 국회의원은 출판기념회에 손을 댈 경우 "내부적으로 동료를 죽이려 하느냐는 식의 반응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선관위는 의원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더 손쓸 방법이 없다며 "관련 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양두원, 영상편집 : 박춘배)
엄민재, 안희재 기자(happym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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