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N번방은 법을 먹고 자랐다
취재기자: 윤나경
촬영기자: 연봉석
방송일시: 2020년 6월 20일(토) 저녁 8시 5분, KBS 1TV
텔레그램이라는 SNS 플랫폼에서 집단적 성착취 범죄가 발생했다. 알려진 피해자만 70여 명, 하지만 비슷한 패턴의 성착취 범죄가 수년 전부터 발생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 정도가 워낙 잔혹했기에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긴 했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점은, 수십~수백만 원이 넘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누군가가 성적 착취를 당하는 모습을 관람하고 즐기던 사람들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박사와 일당들, 그들은 정말 특별한 악마인가
“사실 N번방은 그다지 특별하거나 놀라운 사건이 아니에요.” 취재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관련 분야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입을 모았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에서 ‘발생하고 분노하고 잊히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텔레그램 N번방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예견된 폭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도 된다는 믿음을 준 건 다름 아닌 이 나라의 사법부와 기득권 그리고 우리 모두였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시작이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최근 10년간 가장 급증한 범죄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발생 건수가 10배 이상 늘었다. 이 역시 예견된 결과였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틈을 노리는 범죄의 창궐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다. 막아야 한다는 외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T 산업의 발달’이라는 거대한 명제 앞에 다른 부수적인 부작용들은 당연하게 묵인됐다. 한 시민단체 전문가는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마다 ‘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우리 말을 들어줄까’라는 탄식을 해야 했다.
우리에겐 기회가 많았다. 소라넷, 웰컴투비디오, 버닝썬 등 1-2년의 간격을 두고 굵직한 디지털 성범죄가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결국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터졌다. 조주빈과 그 일당은 선천적 범죄 감각을 타고난 천재형 악마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래도 된다고 가르친 이 사회와 어른들, 그리고 죄를 저질러도 무거운 처벌이나 비난을 받지 않도록 방관한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번엔 바뀔까?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우여곡절 끝에 법도 마련됐다. 관련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 밑에는 여전히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제 대한민국 절반이 잡혀가겠군.” 박사와 갓갓이 잡히고 법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아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사를 받으러 온 가해자에게 ‘운이 나빴다’라고 위로하는 경찰, 아무리 잡아들여도 기소를 하지 않는 검찰, 운 좋게 기소를 해도 결국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판사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언론과 야동 한번 봤다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결국 플랫폼과 방식을 바꾸어 더 은밀하고 정교하게 진화한 제2, 제3의 ‘N번방’ 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시사기획 창>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변화의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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