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 : 하누리
방송일시 : 2021년 8월 22일(일) 오후 9시 40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사죄드립니다.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습니다.”
횡령, 배임, 폭행까지...위법 행위가 적발된 뒤 대기업 총수들이 국민 앞에서 하는 ‘단골멘트’다. 이런 기부 약속을 하고, 법정에서 감형을 받고, 이후 정부로부터 사면까지 받는 것도 총수들만의 통과의례였다.
‘면죄부’, ‘유전무죄’. 정말 돈을 내면 법원에서 감형을 받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과연 그 기부 약속은 지키고 있는 걸까?
■ 집으로 돌아온 이재용...그 뒤엔 ‘아버지의 약속’?
기부 약속을 한 재벌 총수 중 가장 큰 액수를 제시한 사람, 역시 삼성 이건희 회장이었다. 13년 전 삼성특검 수사 결과 4조 5천억 원대 차명재산이 드러나자,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이 중 삼성전자 주식 등 차명재산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때 정확한 액수를 말하진 않았다.
이에 취재진이 당시의 ‘약속’ 내용을 면밀히 뜯어봤다. 세금, 벌금 모두 제외하고 최소 금액으로 계산해봤다. 이들이 환원하기로 한 액수, 삼성전자 등 주식 1조7800억 원어치(2007년 말 기준)였다. 하지만 삼성가는 이 약속을 13년 간 지키지 않고 주식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지금 이 주식을 계산해보니 11조 원대였다.
올 4월, 이 회장의 유족들은 상속세 납부 방안을 밝히면서 ‘미술품 3조 원, 의료계 지원 1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왜’ 기부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13년 전 약속’을 아들 이재용이 지켰다고 추켜세웠다. 그리고 4개월 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이 결정됐다. 정부가 내세운 이유, ‘글로벌 경제 환경과 사회 감정’이었다.
■ 기부 약속만으로 집행유예...‘감형’ 판사들, 퇴직 뒤 ‘회장님’ 곁으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아들 정의선 사장의 승계 문제와 비자금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부자(父子)의 ‘현대 글로비스 주식’ 전량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살펴보니 지금까지 아들 지분 주식은 단 한 주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 재판부는 ‘사회 공헌 약속을 했다’면서 집행유예로 감형해줬다.
SK 최태원 회장은 어떨까. 분식회계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역시 주식 환원 약속을 했다. 법원도 ‘사재 환원’ 약속을 이유로 들며 감형해줬다.
더 공교로운 사실도 있었다. 취재 결과, 이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판사들은 퇴직 뒤 각각 현대 계열사 감사위원, 최태원 회장의 변호인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이 두 회장님들, 판결 뒤 나란히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경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 ‘맷값 폭행’ ‘땅콩 회항’도 판결 뒤엔 ‘돈’
경제범죄 뿐 아니라 폭행, 모욕, 강요 등 재벌들의 범죄는 다양해지고 있다. 영화 ‘베테랑’ 속 재벌 2세의 실제 인물인 SK가(家) 최철원 씨, 1인 시위를 하던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뒤 ‘맷값’ 2000만 원을 줬다. 최 씨는 법원에서 감형을 받았는데, 공탁금을 낸 덕이었다. 공탁금 제도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안 되더라도 법원에 ‘맡겨두면’ 감형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재판 과정에서 부랴부랴 공탁금 2억 원을 냈다. 법원은 이를 ‘반성의 뜻’으로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조 전 부사장은 피해자인 승무원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출소도 감형도 면죄도 모두 ‘돈’ 덕분이었던 재벌 총수들의 역사...이번에 가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에서 끝날 수 있을까. <시사기획 창>은 대기업 회장들이 수사의 칼 끝에서 어떤 약속을 했는지, 그 이행 상황은 어떤지 검증한다. 또 이러한 재산 기부나 큰 돈을 쓴 덕에 실제로 감형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이런 현실은 공정한 것인지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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