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산물 가격의 비밀, 누가 돈을 버나? (윤주성, 김효신 기자)
지난해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던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성들여 농산물을 재배하고도 판로를 찾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농산물의 판로를 찾지 못하거나 제 값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이 부부 만의 문제는 아니다. 풍년이 들어도 농촌 들녘에서는 애써 키운 농산물을 갈아엎는 이른바 ‘산지 폐기’가 되풀이되고 있다.
농민들은 왜 제 값을 받지 못하는가? 농산물 가격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이러한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KBS 기자가 강원도에서 직접 배추와 감자를 수확한 뒤 우리나라의 중앙 공영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 출하해봤다. 그런데 경매를 주관하는 도매시장법인 별로 햇감자는 20킬로그램 상자 기준으로 7,000원에서 32,000원까지 4.5배나 가격 차이가 났다. 배추 역시 12개들이 특품은 6,500원에서 11,000원까지 낙찰가가 천차만별이었다. 동일한 밭에서, 비슷한 크기로 선별해 출하했는데도 도매시장법인과 경매사 별로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가락시장에서 지난 9월 거래된 과일과 채소 13개 품목의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전체 22만여 건 가운데 33%가 3초 만에 낙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초 안에 경매가 이뤄진 경우도 8천 건이 넘었다. 심지어 경매사가 특정 중도매인을 따로 불러 1:1로 경매를 진행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매제는 가격 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우리 사회 일반의 믿음과는 다른 수상한 거래가 공영도매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공영 도매시장에서 지자체를 대신해 경매를 주관하는 주체는 도매시장법인이다. 이들은 농산물의 가격의 등락과 상관없이 낙찰액의 최대 7%를 수수료로 챙기며 해마다 수천 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도매시장법인으로 한번 지정되면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퇴출 우려도 없다. 그래서 서울 가락시장의 도매시장법인은 수백억 원에 거래되고 있고 대주주는 농업과 관련이 없는 건설사와 철강회사 등이 차지하고 있다.
일부 학계 전문가와 농민, 소비자 단체 등에서는 생산자가 농산물 가격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유통 단계를 줄일 수 있는 ‘시장 도매인제’ 등 공영 도매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을 지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 근거가 마련돼 있는데도 농림축산식품부는 20년 넘게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아가 도매시장법인들의 입지를 공고히 해주는 내용으로 관련법이 잇따라 개정돼 왔다.
공영 도매시장의 ‘경매 중심’ 유통 구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한 경쟁 체제 도입이 왜 이뤄지지 않는지 그 실태와 배경을 심층 조명한 이번 주 <시사기획 창>은 12월 19일(토) 오후 8시 5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