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주차 민원 10년 새 400배 증가…
주차 갈등이 살인까지 부르는 대한민국
시사기획 창 최초,
한국 사회 주차난의 원인과 대안을 찾다
국민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서는 지난해 대한민국 주요 키워드를 순위별로 확인할 수 있다. 1위는 재건축과 분양 등 ‘아파트’ 이슈가, 10위는 취업지원과 부당해고 같은 ‘일자리’ 이슈가 차지했다. 그런데 그 밑에 흥미로운 문구가 적혀있다.
“공통 최상위 키워드인 ‘불법주정차’는 키워드 현황에서 제외함”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전년도, 그 전년도에도 ‘불법주정차’는 민원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실제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건수는 1,465만여 건, 그중 340만여 건이 불법주차 민원이었다. 4건 중 1건꼴이다. 주차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의 0순위 민원이다.
■ “누구나 갖고 있지만…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는 만성병”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2010년 불법주차 민원건수는 8,450건, 만 건이 안 됐다. 10년 만에 400배가 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한교통학회 주차분과위원장인 명지대 금기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주차 문제를 이렇게 진단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러나 고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만성병”이라고.
비단 민원 건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주차난과 이로 인한 주차 갈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사소해보였던 다툼이 폭행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주차 문제로 이웃과 얼굴을 붉힌다. 그것도 출근과 퇴근길, 하루에 두 번이나. ‘개인 간의 갈등’이라고 치부되는 동안, 주차 전쟁은 지역 공동체를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 “‘여기에 차 세우면 안돼요’ 그러면 무조건 XXX이야”
빌라와 빌라 사이,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골목길은 자동차 차지가 된 지 오래였다. 주차금지 팻말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서울의 구도심, ‘여기에 차 세우면 안돼요’라는 말에 돌아오는 건 욕설뿐이었다고, 카메라 앞에 선 주민은 분노했다. 차량 앞 유리를 지팡이로 부숴 구치소에 다녀온 백발의 인터뷰이도 있었다.
전쟁은 피해를 수반한다. 좁은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량과 주행 중인 차량, 보행자가 뒤섞인 풍경은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다친다. 특히 어린이 같은 보행 약자의 피해가 크다. 주차난은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도 큰 걸림돌이다. 주차 문제는 이렇듯, 단순히 불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취재진은 대한민국 주차난의 실태와 이로 인한 사회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 주차지옥 대한민국,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파트 법정 주차대수는 세대 당 1대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단지 내 전용면적을 모두 합해 법정 비율로 나누는 건데, 27년째 똑같다. 세대 당 1대가 넘으니 문제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7년 동안 차는 배 이상 늘었다. 누적 등록 2,500만대, 국민 2명 중 1명이 차를 가진 셈이다. ‘1가구 2차량’ 시대도 이제 구문이다.
신축 아파트도 이럴진대 주차장법이 없을 때 지어진 옛 주택들은 오죽할까. 건물을 다시 짓지 않는 한 외부 주차장에 차를 세울수밖에 없는데, 공영 주차장 1면 건설비용은어지간한 외제차 두 대 값이다. 인천 남동구의 등록 차량을 모두 수용하려면 5조 원이 든단다. 그렇다고 민간을 유치하자니 주차비나 과태료나 거기서 거기, 유료 주차장 출입구부터 불법 주차다. 수익이 날 리 없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 복잡한 주차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느냐고.
오랜 진통 끝에 제주는 올해부터 전 지역, 전 차종에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했다. 차고지를 증명해야 차를 살 수 있게 해주는, 일본이 60년 전 도입한 제도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주차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 업체도 등장했다. 더 나아가 세계는 주차 없는, 아니 ‘차 없는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번 주 시사기획 창은 대한민국은 주차지옥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란 지난한 회의론에 반기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