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10년대 국내 최대 항일 조직, 대한광복회를 아십니까. 대구에서 결성된 항일운동사의 자랑거리인데요. 이 항일 조직의 본부가 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으로 위장해 활동을 했었는데, 최근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발굴돼 실체 규명에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박철희 기자입니다.
<기자>
1915년 달성공원에서 출범한 항일결사 광복회.
국내외 100여 개 거점을 둔 1910년대 최대 항일 조직으로, 곡물상으로 위장한 상덕태상회가 본부였습니다.
지금의 대구중부경찰서 자리인 일제 경찰서 바로 앞에 위치했다고 전해진 상덕태상회의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1946년 1월3일 부산지역 일간지 민주중보에 광복회와 박상진 총사령에 대한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입니다.
건물 기둥에 보이는 흐릿한 간판, 사진 좌우 방향을 바꾸니 상덕태상회라는 글자가 나타납니다.
신문 편집 과정에서 좌우가 뒤바뀐 걸로 추정되는데 기사 마지막에는 광복회 연락기관인 상덕태상회라는 사진 설명도 있습니다.
[신형석/대구근대역사관장 : 현재 상덕태상회를 보여주는 유일한 사진입니다. 비록 화질은 낮은 상태지만 다른 사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구 독립운동사에서도 의미 있는 사진이라 생각합니다.]
단체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상덕태상회 간판 바로 옆에 앉은 이가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선생으로 보입니다.
기사에는 1921년 박 선생이 사형 순국 직전 아들과 동지에게 남긴 말들도 포함됐습니다.
"광복을 위해 죽으니 미련이 없지만 일제를 섬멸하지 못해 유감일 뿐이다.", "죽어도 대한을 위해 살아라, 자신만 잘 살려고 민족 전체를 죽여서는 안 된다."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아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전해집니다.
해당 기사는 울산지역 교사인 이현호 씨가 박상진 선생 후손의 증언을 토대로 옛 신문에서 찾아냈습니다.
[이현호/울산 우신고 역사교사 (사진 발굴) : (후손 증언에 따르면) 광복회 활동을 했던 분들이 같이 사진을 찍은 것이 (집에) 있었고 그것을 (광복 직후) 기자한테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 (그 사진에) 상덕태상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910년대 엄혹했던 일제 무단통치 시기에 군 자금 모집과 친일 부호 처단, 세금마차 탈취를 통해 항일의 물꼬를 텄던 광복회.
의병과 계몽운동 세력을 총결집해 출범했고 이들이 내건 공화주의와 무장투쟁의 기치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의열투쟁으로 계승됐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이 광복회 특별기획전을 6월 9일 개막하는 가운데 여전히 베일에 싸인 광복회와 상덕태상회 실체 규명도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도윤 TBC, CG : 김유진 TBC)
TBC 박철희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 02-2113-6000 / 카카오톡 @SBS제보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