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옆으로 보이는 이 사진, 어제(31일) 대법원 앞의 모습입니다.
한 백발의 할머니가 이렇게 재심을 요구하면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죠.
일흔일곱의 할머니가 이렇게 시위까지 하게 된 건 시간을 거슬러 지난 1964년, 할머니가 18살 소녀 시절 당했던 일 때문입니다.
1964년 5월 6일, 최 씨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날입니다.
저녁 8시쯤, 길을 걸어가던 최 씨에게 한 남성이 갑자기 달려들어 성폭행을 시도한 겁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계속 붙잡혀 넘어졌고 결국 18살 소녀는 남성의 혀를 있는 힘껏 깨물어 저항했습니다.
가해 남성의 혀는 1.5cm 잘려 나갔습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 제가 (사건 당시) 집에서 한 몇 개월도 방문 출입을 안 하고 집에만 있다가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조사받으라고 나오라고 통보가 오면 '내일 또 죽었다.' '어떻게 그 순간을 내가 이겨내야 되나?' 그거밖에 생각을 안 하고.]
하지만 이 사건의 가해자가 된 건 최 씨였습니다.
수사 기관에서는 최 씨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며 압박했습니다.
성폭행을 시도했던 남자와 결혼하면 해결될 거 아니냐는 말도 내뱉었다고 합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 뭐 '가시나', '이 년', '저 년' 그런 거는 (수사 기관에서) 욕을 하면서 사람을 때려서 죽을 듯이 손을 들고, 발을 의자 올리고, 그렇게 강압 수사를 하면서 내가 계획적으로 '남자를 병신 만들었다' 실실 비웃으면서 '너 남자를 그래 불구를 만들어놨으면, 병신이 됐으면, 네가 책임 져야 될 것 아니냐? 결혼하자 하면 결혼하면 될 것 아니냐?' 그래서 내가 절대로 못 한다. 내가 당한 그거를 생각하면 때려 죽이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결혼합니까.]
법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중상해죄로 최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겁니다.
또 최 씨가 혀를 깨문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었고 최 씨에게 가해 남성의 충동을 일으킨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구속 수사를 받느라 6개월간 옥살이도 했습니다.
반면 가해 남성인 노 모 씨는 오히려 더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습니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나온 겁니다.
그것도 최 씨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린 혐의만 적용됐을 뿐, 성폭행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 (가해 남성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소 마구간에 있는 소를 끌고 나가고, 또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고 나와서 마루를 두드리고 자기를 '병신 만들었다'·'불구자 만들었다' 이러면서 다 때려죽인다고 난리를 쳤죠. 나는 방에 들어가 있고 내 위에 언니는 진짜로 들어올까 싶어서 방문을 잡고 있고.]
이후 최말자 할머니는 억울한 주홍 글씨를 단 채,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는 등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했습니다.
결국 56년 만에 이 사건의 판결을 다시 해달라면서 재심을 청구했는데요.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지난 2020년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즉각 항고했지만, 부산고법 역시 최 씨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지난 2021년 당시) : 그 18살이 첫날 조사를 받으러 가서 조사를 받고 구속이 바로 그날 됐어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디지털 시대고 달나라 가는 시댄데, 그 시대의 사법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너무 참, 내가 말을 다 표현을 못 하겠어요.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제 억울한 것도 당연하지만, 현재도 성 피해자들이 2중·3중 피해를 보면서 울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사법이 변하고 바뀌어서 그 피해자가 안 생기게끔, 우리 헌법은 정의롭고 평등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기나긴 기다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고법 판단이 나오자 즉각 재항고를 했지만, 대법원이 여태껏 약 2년 동안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대법원의 판단만을 기다린 지 2년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일흔아홉의 할머니가 땡볕의 1인 시위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최 씨는 시위를 마치고 탄원서와 함께 시민 1만 5천여 명이 참여한 서명을 대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최 씨는 탄원서에서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며 "법원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 체제를 스스로 인정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재심을 다시 열어 정당방위를 인정해,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만 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유연/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 (최말자 할머니가) 재심 청구하기까지 5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재심 개시 결정까지 또 3년이 지난 겁니다. 재심 청구하고 나서 부산지방법원이나 부산고등법원에서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변명이랑 함께 기각 결정 내렸는데요. 어떤 시대이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재심을 개시해서 좀 정의로운 판단이 내려질 수 있도록 대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18살에 갇혀 있는 할머니의 시간, 오늘도 최말자 할머니는 대법원의 판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연남 기자(yeon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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