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일,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당장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통일을 먼 일로 생각해서일까.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10월 3일, 통일 30년을 맞이한 독일을 통해 우리의 통일을 상상해볼까 한다.
◾ 통일 후 행복한가요?
베를린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는 30년을 자축 중이다.
그렇다면, 통일 후 독일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수 천만 명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 통일.
어떤 시기에 맞이했느냐에 따라 그 감흥도, 이해하는 시각도 다 다들 듯 한데.
구 동독지역 예나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통일 당시 중장년이었던 부부와 10대였던 아들.
30년의 세월이 지나 이미 부부는 노년이 되고, 아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는데...
통일 후 행복한가요?
“동독시절에는 병역 문제에 대해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게 정말
큰 다행입니다.“ - 카린 플뤼겔 (통일당시 40세)
“김나지움(고등학교)을 가고, 아비투어(수능시험)을 치르고... 여동생도 1년 동안 외국에 갔어요.“ - 제바스티안 플뤼겔 (통일 당시 17세)
독일에서는 통일 전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해졌다.
구 동독지역에서 서독 출신의 유학생이 공부를 하고, 구동독 시절 국민차로 불리던 트라반트가 투어 관광상품으로 변신했다. 베를린장벽, 검문소, 동독 형무소 등은 관광명소가 된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다.
그렇다면 30년 전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 공산당 간부의 말실수로 이루어진 통일!
비밀경찰 슈타지의 주민 감시는 날로 심해지고,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져가는 동독!
동독 주민들의 마음에는 체제에 대한 불만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라이프치히에서는 역사적 민주화 운동 ‘월요시위’가 벌어진다. 얼마 후 시위대규모는 100만명까지 확대되고,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바로 이 자리에서 공산당 대변인이 역사적 말실수를 하게 되는데...
“지금 당장 여행 자유화”
그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리게 되고, 바로 그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11개월 후인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선포하게 된다.
◾ 갑자기 찾아온 통일 ... “나는 2등 시민입니다”
환희는 잠시! 갑자기 찾아온 통일은 곧 위기가 되어 찾아온다.
특히 통일로 삶이 통째로 바뀐 동독 주민들에게!
통일 후, 경쟁력을 잃은 동독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많은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떠나버린다. 결국 실업과 이주 문제는 동독의 경제 기반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또 한 가지! 통일과 함께 동독의 땅이 민영화가 되면서 원 소유주와 그동안 거주했던 동독 주민간에 소유권 분쟁이 속출한 것이다. 결국 동독인들에게 찾아온 크고 작은 위기는 동서독 지역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동독인들은 통일 후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 느끼게 되었다.
◾ 그래도 통일이 답이다!
동독 지역 대표적인 세제 회사 FIT! 절대 문 닫을 일 없을 줄 알았던 이 회사도 통일 후 매각의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때, 정부로부터 초기 투자금 50%를 지원받은 서독 출신의 사장이 인수를 한다. 인수 초기 서독 출신 사장에게 회의적이었던 동독 직원들은 사장의 열정을 알게 됐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힘을 합친 결과 회사는 다시 살아났다.
이처럼 동독지역의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독일 정부의 지원과 노력은 멈추지 않았고, 동독의 도시들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 그래도 통일이 답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과 통일 후 펼쳐진 다양한 상황들은
통일을 꿈꾸는 한반도의 미래 거울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일 통일을 무엇을 배워야할까요?
독일 통일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갔던 슈뢰더 전 총리와, 독일의 석학들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