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암에 자연인 스님이 산다
내연산 중턱에 위치한 문수암은 포항에서 가장 높은 암자다. 그 산중 암자를 지키며 사는 스님은 어딘가 유별난 묵설스님(57)이다. 이곳에 함께하는 것은 당나귀 한 마리, 가파른 길이라 어떤 운송 수단도 올라올 수 없는 문수암에 꼭 필요한 짐꾼이자 스님의 말동무이며 길벗이다.
벌써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4년이 된 묵설스님,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 집을 지으며 시간을 보냈다. 묵설스님이 산 곳곳에 지은 집들은 멀리서 보면 마을처럼 보일 정도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묵설스님은 겨우내 쥐들이 파먹은 흙벽을 보수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원로신부의 쉴 틈 없는 스케줄
12년 전 은퇴한 조정헌 신부님, 은퇴 후에도 신부로서 신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은퇴신부들이 모이는 사제관 대신 작은 시골마을의 공소를 선택했다. 지역 복지단체에서 강론을 하거나 아픈 교우들을 찾아가 봉성체를 해주는 일도 지난 12년간 쉬지 않고 해왔다. 또 하나 바쁜 일정이 있다면 다양한 운동 스케줄이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리거나, 수십 년 갈고 닦은 수준급의 검도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등산도 신부님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다. 특히 은퇴 후 등산을 가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묵설스님이 있는 문수암에 방문하기 위해서다.
스님에게 신부님이 찾아왔다
불교에서 큰 축제로 여겨지는 백중날을 앞두고 기도를 올리는 날,
대부분의 사찰이 북적이는 날이지만, 산꼭대기 절을 찾아오는 이가 많을 리 없다. 문수암의 소수정예 신자들 몇 명만이 자리를 채울 뿐이다. 이른 아침 대웅전에서 신자들과 기도를 마친 묵설스님, 그 앞에 조정헌 신부님이 나타났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문수암을 찾지 못했던 신부님이 오랜만에 산을 오른 것이다. 신부님과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모여 어느 큰 절도 부럽지 않게 북적이는 행사 날이 된다.
스님에게 신부님이 처음으로 찾아온 건 13년 전,
문수암 산신각이 무너졌을 때 시작되었다. 건설자재를 옮길 운송 수단이 없는 문수암에 조정헌 신부님이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목재를 옮겨줬다. 1시간이나 올라야 하는 가파른 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와준 조정헌 신부님은 그 후 오랜 시간동안 매주 문수암을 찾았다. 덕분에 데면데면했던 신자들도 스님과 신부님처럼 거리낌 없이 너나들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종교라는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니 도움을 청할 이웃도, 마음을 나눌 친구도 많아진 것이다.
스님과 신부님이 걷는 길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사귀지 못할 친구가 없잖아요”
“사랑해라, 자비를 베풀어라, 결국 큰 테마는 같더라고요”
스님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새벽예불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부님은 잠이 들기 전 묵주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에 오랜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다.
차이는 차별이 되고 다름은 다툼이 되는 세상,
언제나 평화로운 묵설스님과 조정헌 신부님의 우정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의 신비로운 우정 이야기를
7월 15일 금요일 10시 50분 KBS 1TV에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