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K-컬처의 전령사가 되다
한국 그림책이 세계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80년대 중반 시작된 한국 그림책은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3대 유명 그림책상 수상은 물론, 2020년 전미도서관협회에서 선정하는 밀프레드 배첼더 어워드, 그림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까지 석권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국 그림책은 K-컬처의 전령사로 성장한 것이다.
매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림책 박람회,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이 열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이곳에서도 한국 그림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00년부터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총 책임자를 맡고있는 엘레나 파졸리는 2004년, 한국 그림책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신동준 작가의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과 함께 그림책의 변방이었던 한국은 독창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로 순식간에 세계 그림책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5년에는 라가치상 전 부문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 그림책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국 그림책계를 대표하는 3인의 작가를 통해 그 힘과 가능성을 확인해 본다.
▶국경 없는 공감대, 이수지 작가
그림책의 도시 볼로냐에서도 특히 사랑받는 한국 작가가 있다. 바로 이수지 작가. <그림자 놀이>, <파도야 놀자> 등 이수지 작가의 대표작은 글 없이 그림만으로 이뤄져 있다.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그림만으로 스토리를 표현해내는 이수지 작가의 능력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일까 대표작 <파도야 놀자>는 미국, 이탈리아, 독일 등 14개국에서 출판돼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총 책임자 엘레나 파졸리는 <파도야 놀자>를 가장 좋아하는 책이자 모든 지인에게 선물해주는 책으로 꼽기도 했다. 사실 이수지 작가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유학 시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제본을 들고 무작정 도서전에 가 본인의 책을 출판업자들에게 보여줬던 것.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코라이니 출판사와 연이 닿아 이탈리아에서 먼저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고, 최선을 다하면 이뤄질 거라는 믿음으로 도전했다는 이수지 작가. 그녀는 요즘 또 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는데. 그 현장을 찾아가 봤다.
▶이억배 작가,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세계를 만나다
2020년 미국 전미 도서관 협회가 주관하는 배첼더 어워드는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그림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바로 이억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2010년 한국에서 발표된 이 작품은 한국 분단의 비극을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서 뛰노는 동물들의 아이러니를 통해 표현해낸 작품이다. 그런데 2010년 출간된 이 책이 어떻게 10년의 시간을 건너 2020년에 미국에서 주목받게 된 것일까? 그 뒷이야기를 영국의 번역가 원충현과 미국 플라우 출판사 샘 하인을 통해 들어본다.
이억배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색채를 가진 그림책 작가로 꼽힌다. 80년대 한국 민중문화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90년대 초 사회의 변화를 맞이하며 그림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아이들에게 해외 그림책을 뛰어넘는 한국만의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국의 문화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이억배 작가. 안성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법과 경이로움의 세계로 통하는 문, 백희나 작가
2020년 3월 31일, 스톡홀름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로 발표된 것. 아동 청소년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한 작품이 아닌 작가가 구축해온 작품세계에 대해 수여하는 상이기에 더 의미가 깊다.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작품을 마법과 경이로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 평했는데.
<구름빵>을 시작으로 <알사탕>, <나는 개다>, <장수탕 선녀님> 등의 작품으로 수공예와 애니메이션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백희나 작가. 그녀의 작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제작진은 백희나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인형과 세트 제작부터 촬영까지 그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혹독한 현실을 벗어나 아이들의 세계에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다는 백희나 작가. 독자가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즐거울 수 있었으면 한다는데. 그래서 그녀는 작품 속에서 화자, 가족의 형태 등을 따뜻하고 편견 없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만나본다.
▶그림책, 아이들의 전유물을 넘어서
문지애 전 아나운서는 요즘 그림책에 푹 빠져있다. 아들 전범민 군을 위해 하나씩 읽어보던 것이 마음을 건드려 본인도 함께 빠져들게 됐다는 것. 그녀는 그림책을 통해 엄마로서의 부담감, 커리어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고 치유할 수 있었다는데. 이제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어른들도 그림책을 하나의 예술이자 치유의 방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그림책의 성장은 요원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림책 장르가 아동문학의 하위장르로 분류돼 있다는 것.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연령대를 뛰어넘는 예술, 교육, 심리치료 등 멀티유즈 장르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출판계와 독자들의 인식이 아동문학으로 국한돼 있어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문학이나 만화와 달리 지원을 받기도 어려워 그림책 작가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성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관계자들은 이제 그림책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고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날로 어려워져가는 우리 출판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구축해가는 ‘그림책’. 10월 30일 밤 10시 50분 방송되는 KBS 다큐온에서 아름답고 독창적인 여러 그림책으로 영상으로 체험하며,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K-컬처의 매력과 만나본다.